1457년 스코틀랜드의 왕 제임스 2세는 골프와 축구를 금지하는 법령을 공포(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경기가 처음으로 문서에 등장)했다. 이 법령의 공포 1백년 전부터 골프는 이미 스코틀랜드 국민들에게 인기 있는 운동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제임스 2세의 이 같은 조치는 스코틀랜드가 항상 이웃 잉글랜드의 위협 아래에 있었으므로 모든 남자는 무술 연습을 해야 하는 상황 아래서 내려진 것이다. 그러나 스코틀랜드 남자들이 무술 연습보다 골프나 축구에 열을 쏟자 마침내 왕명으로 금지한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골프 탄생 초창기는 왕권에 의해 탄압을 받았다. 탄압 정책의 일환으로 휴일은 전혀 골프를 할 수 없었으며 네덜란드에서 수입하던 골프볼은 세금이 부과됐다. 하지만 완고하고 개인주의적인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법을 무시해 골프는 여전히 성행했다. 1491년 제임스 4세는 한층 강력한 제재를 가해 위반자는 구속하고 많은 벌금을 부과하기도 했다. 그러자 이에 반발한 일반 시민과 귀족들은 왕에게 직접 항의했다. 그들은 국민 건강에 유익한 스포츠를 금지시키는 것은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왕은 "스포츠는 힘과 기술을 필요로 하는데 골프는 이런 요소가 없으므로 스포츠로 인정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그들은 왕에게 직접 시험해 보기를 권해 왕은 몇 번 스윙해 보았지만 잘 맞지 않아 볼은 불과 몇 미터를 굴러갈 뿐이었다. 이에 화가 난 왕은 이튿날 다시 코스에 나가 샷을 성공시키려고 했다. 이것이 계기가 돼 왕은 그 후부터 열렬한 골퍼가 됐다. 따라서 법은 아무 의미 없는 글자에 불과하게 됐고 골프 인구는 점점 늘어나 왕족을 비롯해 귀족, 상인, 평민 등 각 계층에 널리 보급됐다.

    제임스 5세(1512~1542)는 열렬한 골퍼였고 그의 딸 메리 공주도 골프 광이었다. 메리 공주는 파리 유학 시절에도 골프를 했다. 공주가 골프를 할 때 학생들은 골프클럽을 어깨에 메고 공주의 시중을 들었다. 메리 공주는 그들을 Cadets(아우, 생도라는 뜻. 불어 발음은 Cad day)라고 불렀으며 현재의 캐디(Caddy)는 여기서 유래된 것이었다. 특히 메리 공주는 자신의 시녀인 메리 세턴과 함께 골프를 해서 경기에 지자 그녀에게 목걸이를 선물 했던 일화로 유명하다. 메리 여왕의 아들 제임스 6세는 잉글랜드에 골프를 도입시켰다. 제임스 6세는 런던 근교 블랙히스에 1608년 6홀 코스를 만들었다. 이후 1754년 골프의 발상지라 할 수 있는 세인트 앤드류스 골프코스가 정식으로 개장했다.

    왕족의 비호를 받던 골프는 점차 지위를 굳혀 갔으나 또 다시 교회의 방해에 부딪혔다. 당시 교회는 막강한 권력과 영향력을 행사했다. 교회는 안식일에 골프를 하는 행위를 신을 모독한 행위라고 단정했다. 교회의 압력으로 1593년 에든버러에서 안식일의 골프를 금지했고 예배 시간에 골프를 하는 사람은 고발당했다. 1651년 용기 있는 몇 명의 골퍼가 당국에 항의 햇지만 그들은 모두 불경죄로 몰려 처벌받았다.

    초창기 골프는 대부분 해안을 가로질러 나가 마을 어귀의 여관 근처로 추측되는 특정 지점에서 끝나는 어부들간의 경쟁적인 경기가 됐을 것은 쉽게 추측할 수 있다. 그리고 후일 잔디가 덮인 코스에서 하는 운동으로 발전하게 됐다. 당시 코스에는 인공적으로 장애물을 만들 필요가 없었다. 스코틀랜드 도처에 자연적인 코스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이 때의 코스는 페어웨이가 매우 좁고 홀의 숫자는 제한돼 항상 골퍼들로 붐볐다. 골퍼들의 의상은 반드시 코트를 입는 것이 이때의 풍습이었다.

    18세기에 접어들면서 골프를 체계적인 경기로 만들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즉 골프만 전문적으로 추구하는 클럽이 탄생됐고 공인된 규칙이 제정됐다. 최초의 골프클럽으로 그 구체적인 증거를 가지고 있는 곳은 젠틀맨 골퍼스 오브 리스(Gentlemen Golfers of Leith.그 후 오너러블 컴퍼니 오브 에든버러 골퍼스(Honourable Company of Edinburgh Golfers로 개칭))로 1744년에 설립됐다.

    로열 블랙히스와 로열 버지스는 모두 자신들이 최초의 클럽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아직까지 이를 입증할 만한 증거가 없다. <골퍼 수첩>(The Golfer's handbook)은 블랙히스를 1608년에 창립된 것으로 기록하고 있지만 실제로 이 클럽의 존재를 밝혀주는 기록은 1766년에야 비로소 등장했다. 1766년은 로열 블랙히스의 실버 클럽에 처음으로 볼 하나가 부착된 해였다. 18세기는 각 골프클럽들이 자체적으로 대회를 열어 거기서 우승한 사람을 그 다음 해의 회장으로 선정하는 것을 관례로 따랐다. 그리고 회장의 이름과 날짜가 새겨진 실버 볼 하나를 실버 클럽에 붙여 놓곤 했다.1754년 소사이어티 오브 세인트 앤드류스 골퍼스(Society of St. Andrews Golfers. 그후 1834년 윌리엄 4세에 의해 로열 앤드 앤션트 Royal and Ancient로 개칭됨. R&A)는 실버 클럽을 사들였다. 이들은 13개 조항의 정관을 채택했는데 이 정관은 최초의 공인된 골프 규칙이자 오늘날 전세계 골프 규칙의 원천이 됐고 마침내 사실상 세계 지도상의 모든 나라에 골프를 보급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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